허상의 여적여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함께 대표적인 하이틴 영화로 꼽히는 <금발이 너무해>는 이른바 교내 ‘퀸’인 주인공 엘 우즈가 금발이라는 이유로, 또 동시에 ‘결혼용 여자’는 아니라는 이유로 남자친구인 워너에게 차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는 전형적인 하이틴 무비의 서사를 따라가는 척 하지만 워너와의 로맨스보다 엘 스스로의 자아실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여느 빻은 하이틴 무비들과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금발이 너무해>를 여성주의 영화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우울할 때에는 꼭 머리나 손톱 관리를 받아야 하는 주인공, 멍청하고 눈치 없는 고향 친구들, 굳이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드는 결말, 워너의 약혼녀이자 ‘악녀’인 비비안의 캐릭터로써의 활용 방식 등은 ‘금발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깨부수는 것을 주제로 하는 만큼 그것들을 전부 때려 넣은 영화임을 감안하고서라도 시대착오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금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치 있게 꼬집은 점, 비비안으로 하여금 하이틴 영화 속 ‘악녀’ 캐릭터 서사를 비튼 점(비비안이 워너와의 연애가 아닌 엘과의 우정을 선택한 결말)은 눈 여겨 볼 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극중 워너의 약혼녀이자 여자친구인 비비안은 극의 초중반까지 전형적인 악녀로써 엘과 ‘여적여’ 구도를 형성한다. 비비안은 엘이 워너의 전 여자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수업 시간이나 파티에서 망신을 주고,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워너와의 사랑을 부러 과시하는 등의 얄미운 행동을 한다. 다시 말해 주인공인 엘과 부딪히게 되는 이유가 오직 남자 주인공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별다른 서사나 매력 없이 소비되는, 존재의 이유가 오직 남자 주인공을 향한 성애뿐인 ‘악녀’ 캐릭터, 또 그로 인해 형성되는 ‘여적여’ 구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나 전통적이다.

  당장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적여’라는 표현이 꽤 사실인 양 받아들여졌던 기억이 있다. 여자들은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질투한다는 가설을 필두로 여초 사회에 대한 편견(기가 세다거나 뒷담이 많다는 류의), 여자 상사가 어린 여자 부하 직원을 혼내는 것은 질투를 하기 때문이라는 식이었다. 이러한 편견은 쉽고 빠르게 기정사실화되어 미디어와 매체에 자극적으로 사용되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깊은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를 테면 사회초년생인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해 여성 상사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여성들만의 커뮤니티 형성’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저급한 표현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달리 여자들은 똑똑했고, 그래서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꽤 쉽게 알아챘다. 물론 질투심이 강한 여자가 있을 수 있고 부하 직원에게 못되게 구는 상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자라서’ 질투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또 ‘여자라서 여자에게’ 못되게 구는 것이 아닌, 개인의 성격이고 개인의 잘못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터무니없는 이간질 때문에 잠시 헷갈려 했을 뿐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의 사례보다 ‘여자가 돕는 여자’의 사례가 훨씬 많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금발이 너무해>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그 점에서 비롯된다. 엘은 폴렛과 브룩을 돕고, 엘이 무서워했던 여성 교수는 엘을 도우며, 엘을 시기했던 비비안조차도 결국에는 엘과 연대하게 된다는 점. 그 견고함 사이에서 결국 내팽개쳐지는 것은 워너뿐이라는 점.

1 thought on “금발이 너무해

  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가려운 부분을 이 글이 시원하게 긁어주는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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