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영화에서 발휘되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힘

해당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졸 여성 사원들이 똘똘 뭉쳐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을 메인 플롯으로 취하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고발적이기도, 비판적이기도 하며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오락영화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 사원들의 업무 환경, 상고 출신 고졸 사원의 비애 등 90년대에 만연했던 기업문화에 대한 고발은 단지 소재로 쓰일 뿐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익학원에 빼곡하게 모인 여자들이 보이즈 비 엠비셔스를 우렁차게 외치는 장면은 영화를 관통하는 메인 이미지라고 할 만큼의 짜릿함을 주긴 한다.)

이 영화의 강점은 서사적인 측면에서의 메시지 전달이 아닌, 모든 캐릭터가 그들 각자로 생동감 있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연 삼인방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속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마케팅팀 부장, 송소라 등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관객이 극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관객이 어느새 이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상부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응원하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한다. 

어느 영화에서나 그럴 테지만, 관객의 몰입은 특히 오락영화에서 필수적인 요소인데, 오락영화는 소재의 특수성을 배제하고 서사적인 측면에서의 전형적인 전개방식을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발휘되는 입체적인 삼인방 캐릭터의 힘은 다소 뻔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짜게 식어버릴 수 있는 영화 전반의 요소들을 살려준다는 것에 있다.

삼토반의 메인 캐릭터 삼인방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은 영화의 경쾌한 리듬과 잘 어울리는 당당한 인물들이다. 쭈구리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보람도 자신의 호오는 분명히 할 줄 아는 당당함이 있다고 생각한다(그가 깜짝 놀라는 장면에는 늘 욕이 붙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매사에 열심히 하고 능력까지 있는 삼인방이기에 기회만 잡는다면 진가를 발휘하는 날이 오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감을 앞세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자영의 행동은, 냉철하지만 자기 사람에겐 정이 많은 정유나와 수학과 친구들이 관심사의 범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심보람을 만나 가속이 붙게 되는데, 술집에 모여 이자영의 고민을 들어주다가, 수질 검사서에 의심을 가지게 된 이들이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고, 직접 전화까지 걸어보는 장면은 그들의 개성과 케미가 돋보이는 첫 번째 장면이다. 이는 결국 삼인방의 주도하에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생겨버린다는 점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일을 풀어 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사건의 전개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들에 이들이 다시 상황을 뒤집을 만한 단서를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은 필수적이지만 주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영화 내내 쌓아온 셋의 캐릭터성을 통해 보여주며 관객이 오락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를 충분히 안겨준다. 이로써 우리는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작용하는 힘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깨닫게 된다.

세 배우의 인터뷰를 대충 훑어만 보아도 그들은 온전히 자신이 맡은 배역이 되고자 영화 전반에 있어 매우 공들였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배우들이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드러나게 돼있고, 실제로 그들이 만들어 낸 시너지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부른 ‘왜 그래’ 영상의 조회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영화 속 캐릭터인지, 삼인방의 본체인지 구별 짓지 않아도 돼서, 그런 그들이라서 너무 좋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