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해당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2월 4일, 서울의 21시 셧다운이 결정 나던 날,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윤가은, 전고운 감독들과 함께하는 최하나 감독의 영화 <애비규환>의 여풍당당 GV가 열렸다. 하루만 늦었더라면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지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 영화가 나에게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재밌지만 교훈적이고, 가볍지만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많이 던져주는 해당 작품을 통해서 나는 사회가 그토록 집착하는 지긋한 정상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영화는 주인공 토일(정수정)이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충동적 성격의 근원을 찾아보고자 15년 동안 없이 살아왔던 친아빠를 찾으러 대구로 내려가는 것을 메인 플롯으로 취한다. 이혼, 재혼 가정의 구성원으로 살아오며 정상성이 결여된 가정환경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나름의 트라우마를 늘 가지고 있던 토일은, 친아빠를 찾는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출산도, 결혼도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답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주인공 토일이 결혼 전에 임신을 한 5개월 차 임신부라는 점과 영화 속 주요 캐릭터의 성별을 조금씩 비틀어놓았다는 것, 나중에 또 올 수 있는 그 때가 아니라 지금이 궁금하기에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그것에 책임지려 노력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정상성을 강요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져 그 범주 안에 속하지 못 하는 것을 소재로 삼아 웃기려는 여타 한국 코미디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들이다.  

  영화 후반부, 결혼을 앞둔 양가 부모님과 예비 남편을 모종의 이유로 네트 건너에 적대한 채 토일은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질테니 네트를 넘어오지 말라며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른다. 그의 이런 행동은 여러 상황이 겹쳐 아비규환이 된 지금, 무엇보다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적극적인 표현이다. 모든 게 망했다며 연신 자책하면서도 차분히 내가 원하는 것을 들여다볼 줄 아는 토일의 태도는 영화 내내 그가 하는, 언뜻 보기에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선택들을 관객이 믿고 따라갈 수 있게 해준다.

  남들이 평범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해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곤 한다. 자꾸만 틀렸다고 말하는,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그런 말들에 나의 미래를 대입해보는 일은 너무 손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일이 선택한 방향은 나를 의심하기보다 믿어주는 쪽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은 너무도 무궁무진해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유일하니까. 임신도, 결혼도, 재혼도, 그렇게 살아온 엄마를 보며 토일은 어렴풋이 느낀다. 해보고 아님 말지 뭐.

  임신과 결혼을 빼고 여성주의를 논할 순 없으므로, 또한 그것을 선택한 여성을 배제시켜선 안 되므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이 뭐 어때서, 임신은 또 뭐 어때. 이혼은? 내 행동에 이유를 내 마음에 부과하고 남을 설득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 어떤 선택도 존중 받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여성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늘 바라기에, 명랑하게 임신과 결혼을 다루는 <애비규환>이 그 지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