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순자,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황정은 작가는 말했다.

『연년세세』는 그 수많은 ‘순자’ 중 한 명으로 살아온 이순일과 그의 두 명의 딸 한영진과 한세진, 또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 그의 손녀 제이미까지 ‘연년세세’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작 소설이다. 그중 가장 곱씹어 읽어보게 된 인물들은 마음 한가운데에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사실’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순일과 한영진이다.

한영진은 전형적인 ‘k-장녀’다. 그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하고 싶었던 그림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통업계에 취직해 가족을 감당했다. 달리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한영진은 막내 남동생 한만수의 뉴질랜드 유학비용을 대고, 아이를 낳고서 모성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순일이 두 번의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고 밝혔을 때에는 끔찍함을 느낀다. 한영진은 이순일에게 왜 나는 한만수처럼 대해주지 않았는지, ‘왜 나를 당신의 밥상 앞에 붙들어두었는지’ 묻고 싶으나 그러지 않는다. 그건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삼켜낸다는 의미보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없다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견뎌내는 것을 삶의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억울함 혹은 분노에 찬 어조로 진행되기보다 의연한 체념조로 묘사된다. 평생의 원망을 뱉어내는 대신 혓바닥 아래에 잘 감춰두고 사는 삶. 또 그것에 대해 간헐적이라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게 된 삶. 그 초연함을 일궈내기까지 한영진이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겠으나 다만 추측해본다. 그런 것이 거리낌 없이 가능해질 때 과연 어른이 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순자, 아니 이순일이 용서를 구할 수 없어 말하지 않는 일들은 무엇인가. 이순일은 불에 타죽은 어린 동생에 대한 평생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한중언과의 결혼은 저를 식모 취급하는 고모네 부부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며 이순일은 혼인신고를 하러 갔을 때 사망신고조차 되지 않은 부모와 동생의 이름을 마주한다. 그는 그 이름들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이야기로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불가항력으로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도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겠지. 그리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훗날 그것을 듣게 되는 날이 올까. 온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잘 살기.(…)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이미 더러워진 것들 중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나는 그 표현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대목이라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여자들에 대한. 그렇다면 싱싱한 열매를 맺을 나무를 심고 싶다. 오물이 묻지 않은 탐스런 과일을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또 그것이 ‘연년세세’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