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마음에는 죄가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끝없는 자책을 수반한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책망하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내가 미워하는 대상이 화재사고의 현장에서 나를 살리고 죽은 언니라면, 11층에서 떨어지는 나를 받아내다 평생 한 쪽 다리를 절뚝이게 된 아저씨라면, 나는 왜 그들을 미워하는 일을 관두지 못 하는 걸까. 사고로 인해 큰 손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에 늘 괴로워하는 유원이 그 당사자다. 

책의 주인공인 유원은 십여 년 전, 위층 할아버지가 자기 집 베란다에서 피우던 담배꽁초의 불씨가 마저 꺼지지 않은 채로 유원의 집 베란다에 떨어져 순식간에 아파트 한 동의 일부를 태운 화재사건의 생존자다. 당시에 유원은 여섯 살이었고, 삽시간에 번지는 불길을 잡을 방법을 알 수 없었던 유원의 언니는 물이 듬뿍 적셔진 이불로 유원을 싸매 아래로 던진다. 그렇게 유원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불아기’가 된다. 

그날 이후, 이전에 나를 몰랐던 사람들조차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웃을 때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어하고 약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행복을 바랐다면서도 막상 멀쩡한 나를 볼 때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했다. 
-p.103

지나치게 남에게 관심이 많은 사회 분위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사고의 ‘피해자다움’, ‘생존자다움’, 그리고 이를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재생산해내는 미디어들을 우리는 커가며 자연스럽게 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존자의 이미지는 ‘희망’이나 ‘기적’ 같은 단어로 포장되며, 사고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이미 본인이 가지고 있던 기질들은 무력화시켜 버린다. 또래들과 어울려 놀며 화를 내거나 떼를 쓰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분출하거나, 조금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처음 마주하는 세상에 반응했던 아홉 살의 유원이 그렇다. 

책을 읽으며 나는 유원의 시니컬함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희생자들이 꿋꿋이 삶을 잘 살아내는 모습과, 아픔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며 희망을 말하는 기성 미디어에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고, 작위적이고 폭력적이라 느껴졌던 감정을 해소해주는 듯 했다. 유원은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차있는 머릿속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바짝 날이 서 주변을 경계하며 산다. 그 모습에서 나는, 정말 유원이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저씨가 내 주변을 맴돌며 우리를 착취하는 방식은 누군가에게 전수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하다. 끈기와 집요함은 어느 옛날 영화에서 본 섬뜩한 모성과도 닮은 것 같다. 아저씨는 나를 온몸으로 받아 낸 이후에, 나라는 존재에게 그런 모성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고 한 때는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아저씨의 의도를 가늠하려고 노력한다.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기도, 점진적으로 복수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나는 왜 아저씨의 냄새에 예민해지고, 아저씨의 말투와 사소한 습관을 판단하는지. 나는 왜 당연히 고마워해야할 대상에게 사나운 마음을 갖는지.

-p.42

유원은 계속해서 아저씨를 미워하는 자신을 끔찍하게 생각했고, 미워해도 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늘 괴로워했지만, 수현과 옥상에서 나눴던 수많은 경험들로 인해 그 누구도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수현과의 만남은 서사의 진행에 있어 꽤나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유원을 성장시키는데, 이는 글로써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돼 해당 글에는 최대한 담지 않기로 했다.)

여자들은 대체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꽤나 서툰 것 같다. 미워해도 되는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 계속해서 애쓰지만, 그것보다 쉬운 건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주는 일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나를 옭아매는 미움이라는 감정에서 해소 되는 것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게 더 쉬운 이유는, 솔직한 표현에 용기를 내는 일이 익숙지 않아서 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를 더 잘 들여다보며 미움을 과감히 드러내자. 그것을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일로만 치부해버리지 말자. 그러한 경험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책에서의 유원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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