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 안에 각자 쓰고 이달의 장원으로 뽑힌 멤버의 글을 첫 문단으로 하여 릴레이 소설을 씁니다.
5월의 문장은 영화 벌새, 은희의 “나 성격 안 이상해. 안 이상하다고!”이고, 장원은 빈다입니다.

*일필휘지의 기획은 궁유정, 이옥섭, 한태의 감독님의 글쓰기 모임인 일필휘지를 빌려온 것으로 세분께 콘텐츠 제작을 허락받았습니다.

「오쭈의 행방」

글쓴이/오이 땡선 183 빈다

나 성격 안 이상해. 안 이상하다고!

“그럼 저 아저씨가 그런 소리 하는데 가만히 있어?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어른들 다 계시는데 그러는 게 제정신이야? 너. 엄마가 성격 좀 고치랬지. 집에서나 받아주는 거지, 밖에서까지 그러면,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동네 창피해서 내가, 너, 그럴 거면 나가 살아 그냥.”

분에 못 이겨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안 하고 엄마를 노려보던 주연은 그대로 집을 나왔다. 벤치에 앉아 눈물을 닦더니 이내 교복 상의 단추를 푼다. 치마 속에 넣어둔 반팔 티를 밖으로 빼내고는 벤치에 기대 널부러진다.

“주연이! 여기서 뭐해! 너 아까 103호 아저씨한테 대들었다며? 쪼끄만한게 아주~ 어른들이 하는 말 다 네~알겠습니다 해야지!”

6층 아줌마다.

1.

비릿한 생선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동네 소식통’을 자부하는 6층 아줌마는 읍내 시장에서 생선 가게 장사를 한다. 시장 규모는 꽤나 단출했다. 있을 건 있다지만 웬만한 건 없는 자그만 시장에서 저마다 매대 앞은 파리 날리긴 매한가지였으나, 상인들은 각자 장사 영역을 살뜰히도 지켰다. 너도 나도 눈엣가시 될 만한 일은 애초에 벌리지 않는 눈치였다. 개중에 그나마 목 좋은 데서 벌이 좀 한다는 6층 아줌마는 읍내에서 알아주는 “간잡이”로 통하는데 염장질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지라, 동네 소식통인 그가 심심한 소식 하나쯤 맛깔나게 퍼나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니까 입을 쉬지 않고 뻐끔뻐끔. 아니나 다를까 주연은 고새 소식을 접한 6층 아줌마가 물살이처럼 열심히 뻐끔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공터를 잠식한 이 비릿한 향기는 분명 아줌마의 아구 냄새 일 거라 생각했다. 아줌마를 햇볕에 바짝 말리면 입이 쩌억- 벌어진 노가리 모양일 건데. 때마침 제 상상을 읽은 듯 노가리를 손에 든 아줌마를 보니 주연은 쿡, 하고 웃음이 터졌다.

“어이고 기지배 웃는 거 봐라. 저 하튼 성격 하나 이상해가지고. 동네 사람들 다~ 니 걱정해! 너는..”

“네~알겠습니다.”

주연이 건성으로 대답하자 6층 아줌마의 가느다란 눈이 삽시간에 동그래졌다. 너 이 기지배-를 서두로 한바탕 설교가 시작되려던 때에 구성진 트로트 노래 소리가 공터에 울려댔다. 잠시 머뭇대던 아줌마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받았다. 어 태수엄마. 가고 있다니까 글쎄. 자세한 건 가서 말해줄게. 몇 마디 나눈 아줌마는 금방 까르르 웃어댔다. 짧은 통화를 마친 6층 아줌마는 동네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잊어버렸는지 가늘어진 눈으로 주연을 향해 말했다.

“주연이 너 하여간 103호 아저씨한테 사과 꼭 해! 아줌마가 확인할거야~”

아줌마는 어서 가서 이야기보따리를 풀 생각에 신났는지 옆구리에 건어물 봉다리를 착실하게 끼고는 총총대는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잠잠해진 공터에 홀로 남은 주연은 빨랫감마냥 몸을 늘어뜨렸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 팔 한쪽을 힘겹게 들어올리자 불과 삼십 분도 채 안 되어 일어난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사기 돌리듯 순서대로 빠짐없이, 장면을 하나하나 복기하는 건 주연의 오래 묵은 습관 중 하나였다.

‘우리 주연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아가씨가 다 됐네.’

‘엄마가 너 성격 고쳐먹으랬지.’

‘기지배가. 사과 꼭 해.’

‘그럴 거면 나가 살어.’

‘그럴 거면 나가 살어.’

x발 누군 안 나가고 싶냐고. 주연은 중얼거리며 103호 아저씨의 손길이 진득하게 남은 등 언저리를 부르르 떨쳐냈다. 복기는 이미 엉망이 됐다. 주연은 벌떡 일어나서 구긴 반팔 티를 다시 치마 춤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댕-댕. 익숙한 종소리가 저 만치서 들려왔다. 달려오던 자전거가 주연의 옆에 멈춰 섰다.

“오쭈. 너 한 건 했다매?”

“야 니 말대로 하자.”

“응? 뭘?”

“일단 가면서 얘기해.”

주연이 자전거 뒤에 올라타자 자전거는 힘차게 발을 굴렀다. 아이들은 쨍한 햇볕에 다 말라버린 길을 따라 순식간에 군내가 물씬 나는 골목 밖을 빠져나갔다.

2.

주연과 성민은 곧바로 그들의 아지트인 미진수퍼로 갔다. 아무나 들락날락하는 편의시설인 미진수퍼가 그들의 아지트라고 할 수 있을지 의아하지만, 읍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내리 달려 논길이 펼쳐진 외곽으로 가면 동네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청정지역’인 용달리에 도착한다. 모두가 알은체하기 좋아하는 이 동네에서 주연과 성민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떠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어쩐지 무리한다 했어”

평상에 앉아 토마토바를 쭉쭉 짜내던 주연은 뙤약볕을 맞으며 달리느라 녹아버린 성민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사람이 더위에 이렇게까지 약할 수가 있나.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성민이 물속에서 보여주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늘 궁금한 주연이었다.

“야 그만하고 정신차려봐 심각하게 논의를 해봐야 될 때가 왔어.”

“뭔데 그냥 얘기해봐”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다는 듯 배까지 까고 누워있는 성민을 째려보던 주연은 곧바로 일어나 냉동칸에서 얼음물을 꺼내 성민의 배에 가져다 댄다.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들어 올린 성민이 팍 소리를 지르더니 물 뚜껑을 열어 주연에게 사정없이 뿌린다. 주연은 도망가고 성민은 그 뒤를 좇으며 나누려던 중요한 안건도 잊은 채 둘은 한참의 물장난으로 열기를 식힌다. 물에 흠뻑 젖은 모습을 하고서야 평상에 제대로 앉은 주연과 성민은 서로의 꼴이 웃긴 듯 마주보고 연신 웃어대다 시간을 보니 저녁시간이 돼가는 걸 자각한 성민이 몸을 일으킨다.

“야 여섯시야 훈련 가야됨”

“맨날 지혼자 빠져나가고”

“너도 공부 열심히해 그럼. 그얘기 하려고 했지? 서울 가는 거”

“와 어떻게 알았냐?”

“척하면 척이지~ 야 일단 타 빨리”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에 조급해진 성민은 다시 핸들을 잡는다. 만나면 별 시답잖은 말들로 시간을 보내는 둘이었지만, 최근 들어 진지하게 고민하던 문제가 있었다. 수영부 유망주인 성민은 서울권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동네에 마음이 뜬 주연은 덩달아 자신의 거취를 서울로 알아보던 중이었다. 성적은 올려야 하는데 방법은 모르겠고, 지긋지긋한 동네는 무조건 뜨고 싶고, 머릿속이 복잡해 정리가 안 되는 주연은 성민에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이었지만 체전 준비로 바쁜 시기였기에 턱도 없는 방법이었다. 늘 뒤에 타면 시도 때도 없이 쫑알대던 주연이 조용한 게 이상했는지 성민은 눈치를 쓱 보더니 말을 던졌다.

“그 우리반 채연이 있잖아 우리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애 기억남?”

“성채연? 걔가 너네반이냐 몰랐네”

“걔도 외고 준비한대 내일 우리반 오면 같이 얘기해보던가”

“아 진짜? 채연이가? 하긴 걔 공부 잘했으니까”

“점심시간에 와. 빨리 먹고 와라 계속 퍼다먹지말고”

3.

“나 아무래도 포기해야 되나봐……..”

“…….”

“아씨. 야!! 김성민!!!”

김성민 김성민 김성민.. 텅 빈 수영장에 주연의 고함이 쩌렁쩌렁 공명했다. 물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파드득 들어 올리며 푸하! 하고 숨을 내쉰 성민이 끼고 있던 수경을 느긋하게 이마에 고정하며 대꾸한다. 왜. 왜 성질이야. 애 떨어질 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사는 성민은 그 영향 탓인지는 몰라도 종종 애늙은이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었다. 쪼그려 앉아 무릎에 볼을 대고 있던 주연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니가 애가 어딨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왜?”

“빡쳐서. 친구가 심각해 죽겠다는데 너는 잠수나 하고 있고.”

“뭐, 설마 아까 채연이랑 얘기한 것 때문에?”

성민의 되물음에 다시 한 번 그 상황을 회고하게 된 주연이 뭐라 급발진 하려던 입을 꾹 다물고 제법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 위에 동동 떠있던 성민이 개헤엄으로 주연 가까이 다가와 수영장 턱에 팔을 기댄다. 원래 이런 걸로 풀이 죽는 앤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째끔 안쓰럽다 생각하며.

“걔가 뭐랬지? 꿈도 꾸지 말라고?”

“상처에 소금 치지 마라. 졸라 아프거든?”

“아, 성채연 고 년도 참. 그렇게 말할 것 까지 있었나.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야”

“농담.”

능청스런 성민을 얄궂게 째려보던 주연이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듯 앞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린다. 이후 한숨을 내쉬다, 욕짓거리를 중얼거리다, 종래엔 삼백안 치켜뜬 채 깍지 낀 양손을 인중에 갖다 대고 허공을 응시하는 주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성민이 쯧 혀를 찬다. 곧 읏차, 하고 물 밖으로 나와 주연의 옆에 앉는다. 오쭈.

“너 여기가 글케 싫냐?”

여전히 셜록 포즈를 풀지 않은 주연이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장난 하냐는 듯 즉답한다. 당연하지.

“왜?”

물론 성민도 이 지긋지긋한 동네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연의 필사적인 정도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암만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라 해도 언젠가 한 번쯤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왜냐고? 곰곰이 고민해볼 필요도 없이 주연의 머릿속엔 떠오른다. 마주칠 때마다 위아래로 훑어대는 103호 아저씨의 시선. 툭 하면 나가서 살라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날 때부터 지겹도록 맡아 온.

백 미터를 십 사초에 뛰는 주연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숨겨지지 않는. 6층 아줌마의 혀끝에서부터 풍겨오는.

“비린내.”

“엉?”

“비린내 나잖어.”

이 동네. 수영장은 적막했고 습윤했으며 옅은 물비린내가 풍겼다. 아마 청소할 때 쓰는 락스 때문일 것이다. 아무 출렁거림도 없이 고요한 수면을 힐끔 응시하던 주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멍하게 눈을 꿈뻑거리고 있는 성민에게 통보했다. 가자 그만.

4.

주연은 성민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어두워지는 하늘을 쳐다보다 이윽고 젖은 긴 머리에 성민의 옷이 축축해진 것을 보고 마른 해변에 툭 얹어진 물미역같다는 생각을 한다.

“뭔데, 왜 웃는데 뭔데”

말 없이 페달을 굴리던 성민은 뜬금없는 주연의 웃음에 급히 입을 뗀다.

“아니 그냥. 야 너 바다에서도 수영 할 줄 알아?”

“주연..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지..”

“아니, 수영장이랑 다르잖아. 바닷물 짜고 눈 시렵고. 그래서 할 수 있냐고.”

뜬금없는 주연의 이야기에 괜히 기대했다 싶은 성민은 말 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한다. 그렇다고 내가 수영을 못 하겠냐.

“그럼 넌 여기가 더 좋겠다. 수영장 가기 싫을 때는 바다에서 수영하고 바다 싫으면 수영장 가고. 서울은 바다 없잖아. 아 한강에서 수영하면 되나?”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주연은 성민의 머리를 빙빙 꼬아대며 쫑알대기 시작한다. 사실 주연은 자신이 서울에 가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성민이야 수영을 잘 하니 서울에 갈 수 있겠지만 주연 자신은 명분이 없다. 답답해진 마음에 주연은 성민에게 바다 좀 보게 방향을 바꾸라고 말한다. 비린내 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성민은 주연의 말에 방향을 바꿔 물가로 향한다. 사실 바다라기엔 등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항구에 가까운 부둣가지만. 주연까지 태우고 해변까지 갈 힘은 없는 성민이었다.

“어, 태수엄마. 나 지금 이제 막 정리 끝냈잖아. 곧 가, 어어, 금방 가.”

아씨. 주연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6층 아줌마 목소리에 낮게 욕을 내뱉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보였는데, 지금쯤이면 다들 집에 들어갔을 시간인데, 6층 아줌마 마지막까지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야 미안, 그냥 갈래?”

주연이 사과를 했을 리는 없고, 6층 아줌마가 그냥 지나칠 리도 없는 것을 안 성민은 주연에게 물어본다.

“아니, 됐어. 빨리 지나치기나 해.”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하루에 바다 구경까지 실패할 수는 없다. 최대한 다른 곳에 눈길을 두고 지나치려는데 6층 아줌마가 주연과 성민을 불러 세운다.

“얘, 성민이! 주연이!”

“어머 안 들리니? 성민아!!!”

“이 가스나들, 어른 말 또 안 듣구!”

“너네 다 깜깜해지는데 이렇게 여기 찾아오고 그러면 안 돼. 기지배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몰라요, 너네 여기서 또 앉아가지고 수다 떨려고 그러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던 6층 아줌마는 순식간에 주연과 성민 앞에 나타나 잔소리를 퍼붙는다. 밤이 되면 바다가 새까매서 빠져도 아무도 모른다는 둥, 다 아는 사람들이어도 여자애들은 조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둥 쏟아지는 잔소리에 주연은 성민을 쿡 찌르며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 나가라는 눈치를 준다.

“알겠어요, 이모. 근데 우리..”

“아참, 너네 이거나 먹어.”

이제 가볼게요. 늦어서요. 라고 말하려는 성민의 말을 가로막은 6층 아줌마는 성민과 주연의 손에 웬 봉다리를 쥐어준다. 검은 봉다리 안에는 김부각과 다시마부각이 한 가득 들어있다. 그거 103호 아저씨가 튀긴 거다. 103호 아저씨네 다시마 질 좋은 거 너네 다 알지. 맛나게 먹어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마냥 주연과 성민을 불러댔던 6층 아줌마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고맙다는 말은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부두를 떠난다.

“야 이거 진짜 맛있는 듯.”

성민은 자리에 앉아 삽시간에 봉투의 절반을 비워내며 말을 꺼낸다. 응, 그런 듯. 103호 아저씨를 생각하니 기분이 팍 상하지만 김부각은 죄가 없으니 용서해준다며 주연도 봉투에서 손을 뗄 생각을 않는다. 한참을 말없이 먹기만 하던 주연은 출렁대는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다 입을 뗀다.

“성민아, 바다 수영 하자.”

1 thought on “[일필휘지] 「오쭈의 행방」

  1. 이번 일필휘지도 완전 재밌어요
    마지막 바다수영 보고 동네에서 벗어나기에 도전하는 주연이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제목이 오쭈의 행방이라니 죽는 엔딩인걸까요?😱
    혹시 혹시 유튭에 속편처럼 서로 쓴 글 후기 영상 찍으실 생각 없으신가요?🥺 작가님들이 생각하는 엔딩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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