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 안에 각자 쓰고 이달의 장원으로 뽑힌 멤버의 글을 첫 문단으로 하여 릴레이 소설을 씁니다.
6월의 문장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 버럭이의 “이제 욕해도 돼”이고, 장원은 빈다입니다.

*일필휘지의 기획은 궁유정, 이옥섭, 한태의 감독님의 글쓰기 모임인 일필휘지를 빌려온 것으로 세분께 콘텐츠 제작을 허락받았습니다.

「이제 욕해도 돼」

글쓴이/빈다 오이 183 땡선

“이제 욕해도 되냐?

아 개같아서 진짜. 너 시발 나 이딴 소리 듣게 하려고 부른 거야? 개새끼들이.”

태수는 차에 타자마자 쌍욕을 퍼부으며 담배를 꺼낸다. 

“이거 내 차야. 담배 꺼.”

라이터 소리가 나자 지수는 태수를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한다. 신경질적으로 바깥에 담배를 던져 버린 태수는 넥타이를 풀어 던지며 의자를 뒤로 재껴 누워버린다. 여전히 시발시발거리며 분해하는 태수에게 지수가 말한다. 

“거기서 니가 한 마디라도 더 했으면 우리는 끝이었어. 누울 데 보고 누워야지. 그 나이 쳐먹고, 이렇게 당해놓고,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되냐 넌?” 

“그냥 인정해. 넌 그딴 소리만 들을 수준인 거야. 니가 여태 해온 게 딱 그 정도인 거야. 더이상 나한테 붙어먹을 생각 하지마. 이 차에서 내리면 연락하지마라”

1.

“야…”
태수는 지수의 싸늘한 말투에 꺼내려던 말을 도로 집어넣고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는다. 지수는 풀어뒀던 넥타이로 눈을 가린 채 한숨을 푹푹 내쉬던 태수를 흘끔 쳐다보고 갓길에 차를 세운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지수는 조금 전의 상황을 천천히 곱씹기 시작한다.

눈치 없이 또 오네. 반기는 사람 없는데 꾸준하다 참. 그냥 없는 사람인 셈 쳐요. 아니 그래도 말 한마디 안 거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쟨 참 속도 좋다. 자존심도 없나 봐 어느 낯짝이라고 저렇게. 아버님이 지수만큼은 예뻐하셨잖아요. 그러니 그렇지 뭐. 그래도 지수 쟨 좀 딱하긴 해 그치? 뭐가 딱해. 지 오빠 간수 하나 못 해가지고 저 꼬락서니 난 걸. 그것도 지 복이고 지 능력이고 지 팔자야. 아니 그래도 지 오빠 유학 가있을 동안 여기 남아서 눈칫밥 먹으면서 자기 몫은 하긴 했잖아, 그래서 지금 그나마 저 정도 어깨 피고 다니는 거지. 어휴 난 그래도 그거 생각하면 좀 딱하긴 하던데, 그래도 참, 나였으면 알아서 이제 슬슬 빠질 텐데, 쯧. 쟤가 가만 보면 아득바득 끝까지 챙겨 먹으려고 저러는 거 같기도 해요. 속을 몰라 모르겠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가족 식사 자리에 참여한 지수와 태수를 보며 수군대던 사람들. 그 둘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전혀 내색 없이 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돌아가던 지수였다. 태수는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건들건들하게 들어와 메뉴판부터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니, 쟤는 이 개같은 분위기를 신경 쓸 생각도 없었던 것이 분명해. 태수의 태는 게으를 태고, 지수의 지는 알 지가 아닌데 얄미울 정도로 매사 지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하는 태수와 모든 일을 빠르게 알아차려 제 명을 단축하는 지수였다.

2.

“야 그래서 어떡할 거냐고.. 좆 같잖아 시발, 솔직히 그 새끼들한테 넘어가는 게 말이 되냐? 영감탱 노망난 건 내가 진즉에 알았는데. 이건 뭐 존나 관종짓이잖아.”

냉랭한 기운으로 가득 찬 차 안에서 태수는 간만에 잠자코 있는 듯하더니 그새 의자를 올려 종알종알 거리기 시작했다. 지수가 묵묵부답인 채 아무 반응이 없자 태수는 지수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닦달했다.  

“지수야, 우리 돈. 어? 돈 어떡할 거냐고. 너 똑똑하잖아. 방법 있지?”

“얼굴 치워.”

지수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턱 근육을 울끈 내세우며 대답했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꾸준하게 돈, 돈 거리며 주절대는 태수에 결국 지수는 더러워서 피한다는 심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문을 거칠게 닫자마자 지수는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빠르게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나서야 한숨 섞인 욕지거리가 나왔다. 온종일 짓눌렀던 화가 머리 밖으로 나온 건지, 지수는 이마에 열감을 느끼며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곧이어 따라 내린 태수가 담배를 물고 차에 기댄 지수 옆에 슬그머니 섰다. 

“야.. 나도 가만히 있을라 했어. 근데 생각할수록 존나 빡치잖아. 새엄마, 너, 나. 그래 셋이서 뿜빠이는 알겠어. 근데 생판 모르는 애새끼들 데려와서 이제 진정한 가족이라느니 형제라느니, 앞에서 그딴 소리 지껄이는데 가만히 있냐? 나도 존나 빡치니까..”

“니가 뭔 자격으로.”

지수가 태수의 말을 끊고 맛이 다 닳았다는 듯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떨군 꽁초를 대충 지지고 기댄 몸을 일으킨 지수는 태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대체 니가 뭘 하는데 거기서 나서? 가족이니 형제니 그딴 거 혼자 다 하고 있는 나도 참았어. 허구한 날 울 엄마 까고, 나 까대는 놈들 앞에서 좆도 모르는 척 웃었다고. 씨발, 넌 그게 어렵냐? 놀고, 먹고, 하는 일마다 족족 똥만 쳐 싸대는 니가 뭔 자격으로 가족을 운운해. 니가 뭔데 거기서 울 엄마 얘길 꺼내.”

제 아비한테 눈길 한 번 받겠다고, 그 잘난 딸내미 소리 한 번 듣겠다고 별 지랄을 다 떨었던 나. 앞에서는 불쌍한 애, 뒤에서는 화냥년 자식에 집안 빨아먹는 거머리 소리를 들으면서도 갖은 모욕질을 삼켜온 나. 그래도 자식이라고 혼자 회사고 집이고 뒤처리는 다 떠안는 나. 지수는 속으로 온갖 “나”를 시끄럽게 열거하면서 태수를 바라보는 눈을 올곧게 내세웠다. 도대체 너는, 너희는 무슨 자격으로 그리 쉽게.

“차태수, 붙어먹을 거면 곱게.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싸늘한 말을 끝으로 지수는 차에 올라탔다. 내내 입만 벙긋대던 태수는 혼자 남겨지자 그제야 상황 파악을 끝냈는지 뒤늦게 악을 쓰더니 성질을 못 이겨 자동차 뒷바퀴를 세게 걷어찼다. 때마침 그게 신호탄이 된 것처럼 차에서는 시동 거는 소리가 났다. 눈치껏 타라는 거지, 이미 자존심이 잔뜩 뭉개진 태수는 애꿎은 돌을 차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차는 후진을 했다.  

“뭐야.”

태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운전석의 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지수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기어를 당기고 엑셀을 밟았다. 저를 이곳에 두고 갈 심산인 걸 뒤늦게 깨달은 태수는 옆을 무심히 지나가는 차를 황급히 부여잡고 두드렸다.

“야, 야. 지수야. 어디 가.”

지수가 갑자기 핸들을 꺾자 놀란 태수가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방해물이 없어진 차는 도로에 태수를 남겨둔 채 주저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씨발, 난 어떻게 가라고!”

태수가 멀어지는 차에 대고 연신 소리를 질러대자 달리던 차는 비상등을 켜고 이내 속도를 늦췄다, 이 때를 놓칠세라 뛰어가던 태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스르르 열리는 창문. 그리고 도로 위로 던져진 태수의 옷 가지와 지갑이었다.

“저 씨.. 차지수, 아 씨발 년아!!!”

백미러로 방방 뛰어대는 태수가 보이자 지수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고 금세 미소가 달아난 얼굴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곧 누군가의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수는 생각했다. 내가 좆 될 차례는 아니지.

3.

기자 회견장에서 빠져나온 지수에게 직전까지 쏟아졌던 플래시 세례가 다시 한 번 집중됐다.

“차 가의 유산 상속과 관련되어 질문 한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방금 발표하신 내용은 아버지인 회장님과 상의된 내용이 맞습니까?”

경호원의 엄호를 받으며 차로 향하던 지수가 일순 걸음을 멈췄다. 이제껏 서왔던 공식석상에서 지수는 단 한 번도 기자들의 부름에 응답한 적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 예외의 반응을 해보인 지수가 곧 예의 그 단정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그러니까 기사 많이 써주세요. 잘 보이게.”

도로 뒤를 돈 지수가 언제 웃어보였냐는 듯 날카로운 무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던 차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가 부드럽게 출발하면 정해진 순번처럼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귀에 갖다 댄다. 어차피 지금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지수에게 전화를 걸만한 위인은 손에 꼽기 때문에. 아버지, 혹은,

– 너 진짜 또라이구나 지수야

차태수. 수화기 너머로 찢어질 듯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가득 찬다.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긴 지수는 당장이라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다. 하지만 아직 최태수를 버릴 시기는 아니다.

– 그걸 지금 발표해버리네. 아빠 존나 꼴받았겠다. 야. 네가 지금 뭔 생각인지는 몰라도 난 찬성이야. 난 네 편인 거 알지?

배알도 없는 새끼. 지수는 주구장창 떠들어대려는 태수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아직 조용한 핸드폰 화면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이제 남은 건 한 사람, 인데. 왜 이렇게 여유를 부리실까.

지수가 방금 세상에 발표한 것은 C 그룹이 오 년 동안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 첨단 기술이었다. 전부 까발린 건 아니고 넌지시 언질만 줬는데, 그럼에도 파장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애초에 밝혀져서는 안 되는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지수는 회장을 상대로 도발을 시도한 거였다. 당신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를 해고할 수도 죽일 수도 없으니 내 말을 들어야 할 것이라는 무언의.

전화벨이 울린다. 지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수신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 차지수.

평소와 달리 얼추 굳어있는 듯한 호명. 묘하게 신이 난다. 지수는 짐짓 발랄하게 대답한다. 네, 아빠?

– 나 좀 보자.

4.

올 게 왔다는 듯 수군대던 비서진과 경호차장은 지수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반듯하게 허리를 숙인다. 그리고 따라오는 지수의 트레이드마크.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듯한 저 미소. 그래. 다 똑같은 처지지. 우린 같은 곳을 올려다보며 거기서 떨어질 돈만 생각하니까. C 그룹 내에서는 차 일가를 놓고 늘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요즘 시대에 자녀승계가 웬 말이냐. 그래도 차 팀장이 잘 하고 있지 않냐. 차 팀장은 후보에도 없다. 회장님이 전문 경영인을 알아보고 있다. 뭐 그런, 모였다 하면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 실체 없는 이야기들이 오갈수록 지수는 더 웃었다. 보란 듯이. 

“왔냐.”

지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지수의 예상과는 다르게 차분해 보이는 대진은 방금 전 있었던 지수의 기자회견 화면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어느 종편채널의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예쁘게 나오더구나. 화면에. 잘 컸어.”

“덕분이죠.”

“전문 경영인 더 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니가 이렇게 잘 커줬으니. 몰랐구나 이정도인 줄은.”

지수는 여느 때와 같이 빠르게 대진의 속내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 부단히 노력하면서. 정말? 이렇게 쉽게? 이미 알려져버린 이 프로젝트의 규모를 더 키워보라는 것이 지수가 벌인 일에 대한 대진의 답변이었다. 총 책임자인 네가, 그렇게 당당하게 공표했으니, 해내보라고.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그룹을 대표하는 기술로 자리하도록 만들어 보라고. 그 때까지 네가 지긋하게 신경 쓰는 그 경영권 위임 문제도, 재산 상속 문제도 멈추겠다고.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서있는 지수에게 그만 나가보라며 해당 프로젝트의 자금 운용권과 협력 기업 리스트, 라이벌 사의 로비 의혹 문서들까지 프로젝트를 배로 키울 수 있는 서류를 건네고는 평온한 얼굴로 골프 약속을 잡는 대진을 보며 지수는 주변에 무장한 사람들 하나 없이 온전한 대진의 권한으로 경영권을 물려받는 일은 아주 잠깐,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를 계획을 세울 초반, 그것도 아주 잠시 하다 그쳤던 그 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문 밖을 나섰다. 대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의 애사심을 담아.

지수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태수로 인해 추락할 대로 추락한 회사 내 자신의 경영권 승계 여론을 깔끔하게 뒤집을 기회. 그것도 대진의 인정을 등에 업고서. 대진이 원했던 경영자는 물론 따로 있었다. 그 뜻을 잇기 위해 엘리트 코스로 쫙 뽑아 미국에 보내진 태수가 보란 듯이 차 가에 똥칠을 하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지수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따뜻한 곁 한 번 내준 적 없던 지긋한 기업 오너의 밑에서 배운 거라곤 알아서 눈치 있게 행동할 줄 아는 법이 전부인 자신의 인생이 불쌍해서라도 제대로 한 번 써먹어보자고. 그것이 차대진이 가르친 유일한 가정교육이니까. 태수의 소식에 분을 이기지 못 해 집 안의 잘 부서지는 것들 몇 개를 집어 내던져버리고야 마는 대진의 모습을 보며 지수는 더 철저히,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오직 C 그룹의 최고 경영자만을 목표로 두고. 지수가 본격적으로 회사 일에 참여하면서 내부에는 잘 따르는 ‘내 사람’들도 생겼고, 귀찮은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이차장도 제 몫을 잘 해주고 있으니 이제는 내가 크게 한 건 할 일만 남았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지수였다. 

그때도 지금도, 결정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용기를 주는 건 태수였다. 오빠는 늘 이런 식이라니까. 차로 돌아온 지수는 참아왔던 광기가 폭발하듯 머리가 다 헝클어질 때까지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핸드폰을 들어 저장된 이름을 차태수에서 차이사로 바꾸니 흐릿했던 시야가 놀랍도록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 지수였다. 곧장 문자 한 통을 보낸다. 

‘내 삶의 원동력. 차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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