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존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에서

모든 존재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그 쓸모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요즘이다. 그것이 생명이든, 기술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서. 하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다수의’ 인간들의 필요가 전제될 때, 존재의 유무가 결정된다. 인간의 재미를 위해 달리다 평균 수명이 고작 ‘3년’ 남짓이 되어버린 경주마들이 그렇고, 도통 찾아볼 수 없는 휠체어 경사로가 그렇다. 

소설에서는 종을 막론한 교류가 활발하고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편견의 시선을 거뒀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고치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것에 가까운 상태로 건초 더미에 놓여 있는 콜리를 연민 같은 감정 때문에 80만원이나 주고 데려와 고쳐 함께 지내는 연재, 투데이의 2주 생명 연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은혜 등을 보며 소설 속 인물들의 꽤나 굵직한 결정들은 인간의 필요를 논외로 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의 시선도 아닌 유일한 시선으로 서로만을 대하는 방식은 그동안 소외됐던 많은 것들과 다시 마주하게 한다.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p.338

연재가 은혜를 생각하며 낸 장애물의 모양에 따라 변하는 기술을 가진 ‘소프트휠-체어’의 아이디어는 훗날 정말로 그러한 휠체어가 만들어지는 근간이 된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발전하고 있을까. 너무 빠른 세상의 속도에 낙오된 존재는 없을까. 많은 물음들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제는 속도를 높이고 방향을 위로 설정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게 무엇일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이것이 선행되어야만 기술의 발전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랑은 생명을 살린다. 세상을 변화시킨다. 연재와 은혜, 더불어 투데이의 수명연장을 도운 많은 사람들을 통해 투데이는 경주용이 아닌 존재 자체의 말로 살게 된다. 경주마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안락사를 당할 위기에 처했던 투데이를 살린 마음이 배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누구든 가능한 이야기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원래 그래왔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으로 그동안 외면했던 생명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우리는 돌이켜봐야 한다.

비현실적인 것에 머무르는 이상향을 제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 SF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고, 동시에 SF 소설이 각광받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그 이상향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희망은 꿈을 가지게 하고 꿈은 원동력이 되므로 소설에서 제시한 세상이 마냥 허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 나아가기 위해 그 이상을 꿈꾸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이 소설이 지금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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