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남자를 패기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선생님

그보다 오조오억배는 더 고귀하답니다. 
요즘 나라꼴이 엉망이다. 그놈에 성별갈등은 누가 만드는 건지, 말도 안 되는 손 모양 논란에 그걸 또 사회문화적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언론들, 소중한 여론에 귀 기울여 서둘러 광고 카피와 이미지를 수정하는 기업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엄한 데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폭력에 맞서는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믿음이 잘못됐음을 알려주는 것이 내가 페미니즘을 통해 얻은 배움이기 때문이다. 이 무력감과 분노를 현명하게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생각난 영화가 있었다. 얼마 전 나의 큰이모가 추천해준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이다.

남편에게 사랑 받는 것이 삶의 주 목적인 여자가 있다. 에블린은 남편을 위해 수업도 받고, 퇴근 시간에 맞춰 집 안의 모든 것을 정성껏 꾸민다. 하지만 남편의 관심사는 오로지 야구 중계뿐인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고, 자꾸만 살이 찌는 데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망가질 데로 망가진 에블린을 구원하는 건 숙모가 계신 양로원에서 우연히 만난 니니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니니가 들려주는 잇지와 루스의 이야기이다. 오래 전 휘슬 스탑이라는 카페에서 흑인들과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던, 그러면서 서로의 삶을 돌봤던 둘의 이야기를 통해 에블린은 잃어가는 줄 알았던 자신을 찾게 된다.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영화의 내용은 이렇지만, 영화 속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보여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인종차별에 고통 받았던, 가정폭력을 당하고만 있었던 인물들을 보듬고 나아가게 하며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감과 그것을 올바르게 마주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다소 교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감상은 잇지를 통해 일어선 루스와 빅 조지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일어선 힘이 잇지가 세상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통해 힘을 얻으며 더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차별에 대한 폭력은 만연하고 물리적이든 아니든 그것에 맞서기에는 우리가 가진 힘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말할 때 남성들이 받아 온 차별을 이야기 한다. 여성들이 받아온 혜택을 이야기 한다. 페미니즘은 개인 간의 우위를 따져 묻는 것이 아니다. 잇지가 살아가는 방식을 빌어 이야기 하자면,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영화에는 여성이 받는 차별 이외에 흑인차별, 장애인차별, 빈곤층차별 등 다양하게 보여지는 차별들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 그렇게 됐을 때 개인의 이야기를 오롯이 그 개인으로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볼 수 있는 페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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