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이십대이고, 따라서 노인에게 가해지는 혐오의 시선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얼추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노인 혐오가 비단 뉴스의 사회면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거대한 사건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변에서도 ‘틀딱’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쓰인다. 노인에 대한 편견은 생각보다 더 일상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영화에서는 이 사실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해놓았는데, 이를 테면 동인이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급하게 일어나느라 치우기를 잊었을 때 빈정거리는 아르바이트생, 기운이 없어 신호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효정에게 그냥 죽으라며 윽박지르던 차주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니까 노인들은 대체로 느리고, 잘 잊고, 귀찮은 것들을 젊은이들에게 떠넘기고 살아가기 때문에. 편견이라는 것은 이토록 차갑고 막무가내다.

  영화 <69세>는 한 여성 노인이 젊은 남성 간호조무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만 보아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 효정은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형사들은 수사 내내 ‘왜 젊은 남자가 노인에게 그런 짓을 하겠느냐’라는 스탠스로 일관하며, 법원 또한 ‘젊은 남성이 나이든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황당한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그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효정에게 불리하다. 그럼에도 효정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영화 말미의 내레이션에서 이야기하듯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 효정을 구제하는 것은 동거인인 동인도, 사회도 아닌 효정 자신이다. 영화에서는 노인인 효정을 약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잠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 동인과 같은 주변 환경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 이후에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가해자와 자신을 치매로 몰아가는 형사, 자신에게 ‘조심 좀 하시지’라고 말하는 간호사에게 움츠러드는 대신 강단 있는 눈빛으로 대응한다. 가해자의 처가에 직접 찾아가 범죄 사실을 밝히고 간호사에게는 “뭘 어떻게 조심해요”라고 물었다. 직접 펜을 들고 사건문을 작성해 바람에 휘날리도록 내버려두는 엔딩 장면은 그런 면에서 더더욱 의미 있게 볼 수 있겠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려는 시도. 또 그 주체가 ‘여성’이자 ‘노인’이라는 점. 하지만 동시에 씁쓸한 양가감정이 들었던 것은, 노인이라고 해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가지고 있던 존엄성이 닳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외롭게 존엄성을 입증해보여야 했던 현실이 너무나도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느릴 수도, 잘 잊을 수도, 귀찮은 것들을 떠넘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금 천천히 말해볼 수도, 거듭 강조해볼 수도, 한 번쯤 배려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 세상의 ‘효정’들이 효정과 같은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아직 살아있음을 생동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함께 지금껏 노인을 어떤 존재로 대해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 동인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소리쳤던 것처럼, 우리도 결국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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